
한참 굶은 아이를 뷔페에 데려가면
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.
요즘 내 마음이 꼭 그런 것 같다.
어릴 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고
철이 없었다.
그러다 결혼을 했고
네 번의 출산을 했다.
어렸고 너무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들.
그래서 모든 것들을 요령 없이
그대로 다 삼켜냈다.
마치 무덤 속 같은,
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터널을
걸어가는 듯한 암울하고 외로운 시간.
그 시간을
오직 ‘젊음 하나’로 버텨냈다.
그리고 그 대가로
매일 내 젊음은
내 몸에서 뚝뚝 떨어져 나갔다.
나는 존재의 위협을 받았고
그때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.
캔버스 위에
‘내가 살아 있다는 흔적’을 남기기 시작했다.
그 과정을 통해
나는 나에 대해, 내 시간에 대해
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,
그제서야
내 자신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.
나는 나를 방치했고,
지켜주지 못했다.
이제 나는
나 자신에게
무엇이든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.
“괜찮으니까, 다 해봐도 돼.”
그렇게 말해주고 싶다.
이 나이에
이것저것 찍먹하는 게
눈치가 보이고,
그 어느 것 하나
열매 맺지 못할까 봐
미리부터 수치스럽기도 하지만
나는 나를 위해
창피함을 용기 있게 외면하기로 했다.
나는
사랑받고,
탐색하고,
도전하고,
실패해도 괜찮은 시간을
잃어버린 채
마흔이 되어버린 사람이다.
그런 나에게,
누군가의 입에
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먹이고
정작
너무 배고픈 나 자신을 위해
지금은
마음껏 찍먹할 시간을
주고 있는 중이다.
그러다
언젠가는 내 남은 시간을
다 부어도 좋을,
가장 맛있는 무언가를
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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